영덕 죽도산 퇴적암
 
1. 퇴적암의 일생과 함께하는 죽도산
퇴적암은 물에 의해 운반된 퇴적물(자갈, 모래, 진흙 등)이 쌓인 후, 지하 더 깊은 곳에서 단단하게 굳은 암석이다. 축산항의 죽도산은 전체가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축산항 주변에는 육지에서 흘러 들어온 모래가 쌓여 모래해변을 만들고 있으며, 죽도산은 그 모래언덕들과 만나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이곳 모래해변에서는 퇴적암이 되기 전의 모래 퇴적물을 볼 수 있으며, 죽도산 해안 코스에서는 퇴적암의 다양한 양상과 더불어 퇴적암 형성 이후 생길 수 있는 지질구조를 순차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1) 어른이 된 모래와 자갈
아기 퇴적물에서 어른 암석이 되기까지
축산항의 남쪽에는 축산천의 강물을 타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따라 모래들이 쌓여 있다. 그곳에서 모래들은 아직도 육지를 떠나고 싶지 않은 듯 모래해변을 만들어 서로를 부여잡고 있다. 이런 모래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게 되면,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모래 알갱이들은 서로를 더욱 강하게 부여잡아, 비로소 사암이라는 퇴적암이 된다. 이점에서 퇴적물과 퇴적암의 과정을 사람의 일생에 빗댄다면, 퇴적물은 어른이 되기 전 유년기의 상태라 할 수 있다.
 
퇴적암을 구성하는 입자 크기는 어떻게 변하는 것일까?
현재 이곳의 모래해변을 구성하는 퇴적물들은 축산천을 타고 머나먼 여정을 거처 온 모래 입자들이다. 이때, 이런 모래와 같은 작은 입자들을 퇴적물이라 하고, 이런 퇴적물들이 엉기어 굳은 암석을 퇴적암이라고 한다. 퇴적암에는 사암, 이암, 역암 등이 있다. 모래 크기의 입자들이 뭉친 암석을 사암이라 한다. 모래보다 더욱 작은 입자인 진흙은 이암을 만드는 주재료이며, 자갈과 같이 큰 입자들이 만든 퇴적암을 역암이라고 한다.
퇴적물들의 입자는 어떻게 변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본래의 퇴적물들은 큰 바위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자연이 조각하는 대로 떨어져나간 암석의 파편들이 물을 따라 움직이면서, 서로 모난 부분을 깎아주며 둥글게 변해간다. 마치, 사람들이 서로 생활하면서 둥글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퇴적물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게 된다. 만약 퇴적물이 강물과 함께 이동한 거리가 짧다면 여전히 그 크기가 큰 자갈로 남아 강의 상류에 쌓이게 된다. 계속해서 여정을 떠나게 되는 것들은 그보다 입자가 작은 모래와 진흙이다. 모래는 강의 중류 또는 하류에서 퇴적될 것이며, 입자가 아주 가는 진흙과 같은 퇴적물은 아주 기나긴 여정을 떠나게 되어 그보다 먼 강의 하류, 어쩌면 저 먼 바다에 쌓이게 된다.
 
죽도산엔 어떤 어른들이 계실까?
퇴적물들은 먼저 온 순서대로 아래로 아래로 묻히게 된다. 계속해서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지하의 강한 압력과 높은 열 때문에 퇴적물은 고단한 성장기를 거치며 단단한 바위가 된다. 죽도산은 주로 모래와 자갈로 만들어진 바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래들이 모여 만들어진 암석을 사암이라 하고, 그보다 큰 자갈들이 모여 만들어진 암석을 역암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서로 크기가 다른 구슬을 그 크기에 따라서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지질학자들은 퇴적암을 그 암석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구슬)의 크기에 따라 퇴적암을 분류했다.
 
2) 퇴적암의 나이테, 층리
유년기를 지난 퇴적물들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어린이가 자라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처럼 퇴적물들도 일종의 사회생활을 겪게 된다. 유년기의 퇴적물들이 모이는 곳을 퇴적분지라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퇴적암의 성장 요람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퇴적암의 나이와 성장 환경이 기록된 층리
이곳에서 관찰되는 층리는 퇴적암의 성장기 중 어떤 페이지를 보여주는 것일까? 퇴적암을 구성하는 입자는 그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을 거쳐왔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특정한 사건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요히 흐르는 강은 무거운 입자를 움직이게 할 수 없지만, 모래알갱이를 싣고 와 이곳에 사암층을 만들었다. 한편, 지금도 한여름에 강한 태풍이 찾아오는 것처럼 수백만 년 전 이곳에도 태풍이 있었고, 거센 강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성난 강물은 무거운 입자를 끌어다가 이곳에 내려놓았고, 자갈들은 역암층이 되어 이곳에서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2. 나이든 암석에 자리한 세월의 흔적
사람들도 살면서 한번쯤 다치기 마련이고, 그 상처를 긴 기간 동안 또는 한평생 가지고 살아가기도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상처투성이 손처럼 세월의 흔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이처럼, 바위들도 그들의 몸 한 구석에 상처를 가지고 늙어가기도 한다. 퇴적암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갈라짐이 없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이 주는 시련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쪼개지기도 한다.
 
1) 조각된 퇴적암, 얼굴바위
기이한 형태의 바위, 깊은 계곡 그리고 장엄한 폭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종종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경관 앞에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이런 경치는 마치 자연이라는 거대한 예술가가 지형을 조각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죽도산 해안 탐방 코스의 중간에도 자연의 손길이 스쳐 만들어진 조각상이 있다. 이 바위는 사람의 얼굴 형태를 닮아 ‘얼굴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자연이 얼굴바위를 조각한 방법
동해가 감싸고 있는 죽도산의 해안을 걷다 보면, 우리는 고심에 빠진 듯 지긋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바위를 발견하게 된다. 얼굴바위는 다섯 층의 사암과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단한 퇴적암이 형성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이 주는 힘에 따라 암석이 깨지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조각품’이다.
얼굴바위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암과 역암의 기울어진 층리 때문이며, 이런 줄무늬는 얼굴과 목을 구분하면서, 얼굴바위의 턱선을 장식하고 있다. 자연은 퇴적암이라는 재료를 앞에 두고, 그 암석을 얼굴 형태를 가진 바위로 조각했다. 자연은 퇴적암을 크게 두 방향으로 깎아내 얼굴바위의 전체적인 형태를 구성했다. 이후, 자연은 파도의 손을 빌려 얼굴바위의 표정을 묘사했다. 암석의 깨어진 틈을 따라 역암의 입자가 떨어져 나갔고, 얼굴바위의 눈이 있는 자리에는 특히 큰 자갈이 빠져나가 눈매가 또렷해졌다. 또한, 자갈이 사라진 자리에서 바닷물이 조금씩 증발되면서 생겨난 소금들은 퇴적암을 조금씩 갉아냈고, 이러한 과정은 얼굴바위의 이목구비를 보다 뚜렷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체적인 얼굴의 형태부터 세밀한 표정까지 묘사해내는 자연의 솜씨에서 자연은 분명 위대한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2) 퇴적암의 상처를 메운 흔적들
 
상처를 메운 마그마
피부에 난 상처에 피가 나고, 나중에 새살이 돋아 그 자리를 메우는 것처럼, 암석의 쪼개진 틈 사이로도 새살을 메우는 것이 올라오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종종 뜨거운 마그마가 암석이 갈라진 상처를 메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의 모래돌이나 자갈돌의 틈 사이를 메우고 있는 푸른빛의 암석이 바로 마그마가 굳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다른 암석의 상처를 메운 마그마를 ‘암맥’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관찰되는 암맥은 마그마가 퇴적암의 갈라진 틈들을 채우고 있는 경우이다. 틈을 따라 자리잡은 마그마가 굳은 뒤, 또 다시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다듬는 대로 머물며 깎이면서 현재와 같은 경관을 가지게 되었다.
 
상처를 메운 다른 암석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죽도산의 퇴적암 아래 깊은 곳에는 어떤 암석들이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곳에서는 죽도산을 구성하는 퇴적암과 전혀 다른 암석들을 관찰할 수 있다.
마그마는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지고, 종종 뜨거운 상태의 마그마는 그들을 덮고 있는 암석들이 만들어진 틈을 따라서 그대로 지표로 분출되기도 한다. 한편, 지표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마그마의 강한 흐름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기존의 암석들을 뜯어다가 육지 위로 가져다 놓기도 하는데, 뜯긴 암석들은 마그마 안에 붙잡힌 상태로 올라오게 되어 ‘포획암’이라고 부른다. 이후, 자연의 손길이 닿는 대로 조각된 지형 위에 우리가 서있고, 우리는 이곳에서 암맥과 암맥이 끌어올린 다른 암석들을 관찰할 수 있다.
암맥과 그에 포획된 암석을 통해, 우리는 죽도산의 아래에는 어떤 암석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죽도산에 발달하는 암맥에는 다양한 종류의 포획암들이 잘 관찰되는데, 이들은 변성암(편마암, 규암), 화성암(화강암), 퇴적암(사암)으로 구성된다. 이 중 변성암은 죽도산을 구성하는 퇴적암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암석이다.
 
 
3. 땅과 이어진 섬
하늘에서 바라본 현재의 죽도산은 마치 원래 육지와 한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붙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지리학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 묘사한 죽도산은 육지와는 떨어진 별개의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리던 중에 먹물 한 방울을 잘못 떨어뜨린 것일까?
 
1) 죽도산이 육지와 연결되기까지
죽도산의 남서쪽에는 북쪽으로 흐르는 축산천이 있고, 그 강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양의 퇴적물을 운반해왔다. 축산천을 따라 유입된 퇴적물은 동해를 따라 쌓여 모래해변을 만들었다. 축산천을 따라서 많은 모래가 공급되기도 했지만, 섬의 모습으로 동해의 거센 파도를 막아준 죽도산의 역할도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육지에서 뻗어 자란 모래해변과 죽도산을 방패 삼아 섬의 뒤편에 머무르며 쌓인 모래가 만나면서 죽도산은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렇게 육지와 연결된 섬을 ‘육계도’라고 하며, 그들을 잇는 연결고리를 ‘육계사주’라고 한다. 현재의 죽도산은 섬이 아닌 육계도 지형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의 매립공사로 인해 일부는 인공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매립 형태는 과거의 육계사주 모양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현재 그 모래둔덕은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터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육지가 섬에게 뻗은 손, 사취
긴 여정을 거쳐 축산천의 하구에 다다른 모래들은 동해를 만나면서, 그들의 여정의 속도를 늦추며 이곳에서 한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모래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모래언덕을 만들었고, 지형의 영향으로 조금 굽은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곳의 모래언덕을 만든 퇴적물들은 대부분 육지에서 기원했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퇴적물이 공급되면서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그들의 영역을 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동해안의 해류를 타고 조금씩 북쪽으로 이동하던 모래들은 축산천을 만나면서 가라앉아 좁고 긴 모래해변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안을 따라 육지에서 조금씩 자라난 모래둔덕을 ‘사취’라고 하며, 죽도산의 남서부에 생겨난 모래해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넓어졌다. 아무래도, 자연은 죽도산을 홀로 떨어진 섬으로 바라보기 싫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강 하구에 자란 모래언덕과 사취는 육지가 외로이 떨어진 섬에게 뻗고 있는 손이 아닐까?
현재 우리는 죽도산 남서부의 사취를 모래해변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영덕 블루로드 다리가 지어져 있어 육지가 섬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고 있는지 더욱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그 위에서 감상할 수 있는 탁 트인 경관은 자연이 우리가 이곳을 찾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죽도산 육계도의 형성
죽도산의 육계도 지형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축산천을 통해 공급된 모래와 자갈은 사취를 만드는 주된 재료 역할을 했고, 죽도산의 서편을 따라 파도가 약한 곳에서도 퇴적물이 쌓였다. 이렇게 양쪽에서 쌓이기 시작한 모래는 죽도산과 육지를 잇는 지형을 만들게 되었다.
축산천의 북쪽, 죽도산의 북서쪽에는 죽도산과 거의 같은 모양으로 유사한 고도를 가진 와우산이 있다. 이 산은 강을 따라 공급되는 모래와 자갈이 더 이상 북쪽으로 흩어지지 않게 방파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퇴적물이 그 안에 갇히게 되면서, 현재 죽도산 남서부의 모래해변을 만든 사취가 성장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동해안을 따라 흐르는 해류는 이 사취의 성장 방향을 북동쪽으로 유도했는데, 이 사취는 육지에서 자라나는 사취가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육지와 죽도산은 그들의 손을 맞잡게 되어 육계사주를 만들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현재 뻗어 나오고 있는 사취도 죽도산과 닿지 않을까?
 
죽도산 육계도의 형성 모식도